
"시간이 부족해요."
영어 시험 후에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에 대한 가장 흔한 처방은 "빨리 읽는 연습을 해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학생들이 푸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 읽는 속도가 느려서 시간이 모자라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시간은 다른 데서 샙니다.
1. 되돌아 읽기
가장 큰 누수입니다.
한 문장을 읽고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읽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또 읽습니다. 세 번째쯤 읽으면 이해가 되는데, 그때는 이미 그 문장 하나에 30초를 썼습니다.
문제는 이게 무의식적이라는 겁니다. 학생 본인은 자기가 되돌아 읽는지 모릅니다. 눈이 알아서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확인 방법이 있습니다. 지문을 읽을 때 손가락이나 펜으로 읽는 자리를 짚으면서 뒤로 못 가게 해보는 겁니다. 처음엔 이해도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며칠 하면 한 번에 이해하려는 압력이 생기면서 오히려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2. 안 봐도 되는 걸 봄
앞서 다른 글에서 건너뛸 단어와 찾아야 할 단어를 구분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간 문제로 다시 옵니다.
예시 속 고유명사, 나열 중 한 항목, 부사 하나에 멈춰 서는 학생이 많습니다. 그 단어가 답과 무관하다는 걸 판단하지 못해서 일단 붙잡습니다.
한 지문에서 이런 게 서너 개면, 지문당 20~30초입니다. 지문이 스무 개 넘게 나오는 시험에서 이건 10분입니다.
3. 선지를 여러 번 읽음
문제를 풀 때 선지 다섯 개를 읽고, 답을 못 정해서 다시 읽고, 지문으로 갔다가 다시 선지를 읽습니다.
선지를 세 번 읽으면 그 문제에만 1분 넘게 씁니다.
원인은 대체로 지문을 읽고 나서 자기 답을 안 만든 것입니다. 자기 답이 없으면 선지 다섯 개를 비교하는 수밖에 없고, 비교는 오래 걸립니다. 지문을 다 읽은 시점에 "답은 대충 이런 내용"이 머리에 있으면 선지는 한 번만 읽어도 됩니다.
4. 어려운 문제를 붙잡음
빈칸이나 순서에서 막혔을 때 그 문제를 놓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건 시간 배분 문제이기도 하지만, 심리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넘어가면 지는 것 같은" 느낌이요.
기준을 미리 정해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문제에 2분 넘어가면 표시하고 넘어간다, 같은 식으로요. 그리고 이 기준은 시험장에서 정하면 안 됩니다. 평소 연습에서 몸에 익혀야 시험장에서 작동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연습하나
"빨리 읽기"를 연습하면 대체로 실패합니다. 속도를 의식하면 이해가 떨어지고, 이해가 떨어지면 되돌아 읽게 되어서 결국 더 느려집니다.
대신 이렇게 연습하는 걸 권합니다.
한 번에 읽기. 되돌아가지 않는 것만 목표로 삼습니다. 속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되돌아가지 않으면 속도는 알아서 붙습니다.
읽고 나서 덮고 요약하기. 이걸 하면 읽으면서 정리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정리하면서 읽으면 선지를 여러 번 볼 일이 없어집니다.
시간 재고 풀되, 시간을 줄이지 말고 늘리기. 의외로 이쪽이 효과적입니다. 처음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정확도를 100%에 가깝게 만듭니다. 정확해진 다음에 시간을 줄입니다. 순서를 반대로 하면 부정확한 습관이 굳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끼는 학생 중 상당수는 사실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판단을 못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넘길지, 언제 포기할지. 이 판단들이 자동화되면 같은 실력으로도 시간이 남습니다.
읽는 속도는 몇 달이 걸려야 바뀌지만, 판단 기준은 며칠이면 바꿀 수 있습니다. 급하면 이쪽부터 손대는 게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