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지문을 130만 번 연결해봤습니다 — 어휘 학습 순서가 바뀌는 이유

단어와 지문을 130만 번 연결해봤습니다 — 어휘 학습 순서가 바뀌는 이유

"어떤 단어를 먼저 외워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흔한 답은 "빈출 단어부터"입니다. 맞는 말인데, 실무에서는 반쯤 쓸모가 없습니다. 어느 단어가 빈출인지를 우리 교재 기준으로 알아야 하는데, 시중 빈출 단어장은 다른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직접 세보기로 했습니다. 지문 16,456개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사전과 대조해서, 어떤 단어가 어느 지문에 나오는지를 전부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결이 1,299,449개입니다.

지문 하나당 평균 79개의 단어가 사전에 등록된 단어로 잡혔다는 뜻입니다.

이 연결로 무엇이 가능해지나

단어와 지문을 양방향으로 오갈 수 있게 됩니다.

단어 → 지문. "이 단어가 나오는 지문을 다 보여줘"가 됩니다. 학생이 단어 하나를 여러 문맥에서 만나게 할 수 있습니다.

지문 → 단어. "이 지문에서 학생이 모를 만한 단어만 뽑아줘"가 됩니다. 지문에 나온 단어 전부가 아니라, 난이도 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것만 골라서 단어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가 실제로 훨씬 자주 쓰입니다. 수업에서 지문을 하나 정하면, 그 지문 전용 단어장이 바로 나옵니다.

세보고 나서 바뀐 생각

작업 전에는 "빈출 단어 순으로 외우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빈출 상위권은 이미 아는 단어로 채워집니다. 당연합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가장 쉬운 단어니까요. 상위 몇 백 개는 학생이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그 아래는 어떤가.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빈도가 뚝 떨어지는 구간에 들어가면, 몇 번 나오는 단어들이 아주 길게 이어집니다. 3번 나오는 단어, 2번 나오는 단어, 1번 나오는 단어가 끝없이 늘어섭니다.

"빈출 순으로 외우기"는 이 구간에서 무너집니다. 3번 나오는 단어와 2번 나오는 단어 사이에 학습 우선순위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순서를 매길 수는 있지만, 그 순서를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꿨습니다

빈도 대신 범위를 기준으로 삼는 쪽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같은 5번이라도 성격이 다릅니다.

  • 한 지문에서 5번 나온 단어 → 그 지문의 주제어입니다. 그 지문을 공부할 때만 필요합니다.
  • 다섯 지문에서 한 번씩 나온 단어 → 여러 맥락에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외워두면 계속 쓰입니다.

전자는 지문 학습의 일부고, 후자는 어휘 학습의 대상입니다. 성격이 다른데 빈도만 세면 똑같이 5번으로 묶입니다.

이 구분을 넣고 나서 단어장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지문별 단어장에는 그 지문에서만 쓰이는 주제어까지 넣고, 누적 단어장에는 여러 지문에 흩어져 나오는 단어만 넣습니다.

실제로 학생에게 어떻게 쓰이나

수업 흐름은 대체로 이렇게 잡힙니다.

  1. 지문을 정합니다.
  2. 그 지문에서 학생 수준 기준으로 걸리는 단어만 뽑아 단어장을 만듭니다. 보통 지문당 15~25개 선입니다.
  3. 단어를 먼저 훑고 지문을 읽습니다.
  4. 지문을 읽고 나서 그 단어들을 다시 봅니다.

3번과 4번이 다 있어야 합니다. 단어를 먼저 보면 지문이 읽히고, 지문을 읽고 나서 다시 보면 그 단어가 어느 문맥에 있었는지가 붙습니다. 순서를 하나만 하면 절반만 남습니다.

아직 못 한 것

연결을 130만 개 만들어놓고도 못 쓰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활용형 처리입니다.

running과 ran과 runs를 run으로 묶는 작업은 해뒀습니다. 그런데 묶어야 할지 아닐지 애매한 경우가 계속 나옵니다. developing이 develop의 활용형인지 '개발도상의'라는 별개 형용사인지는 문맥을 봐야 압니다.

지금은 사전에 별도 등재된 것만 분리하고 나머지는 원형으로 묶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학생 단어장에 가끔 이상한 항목이 섞이는 건 대부분 여기서 옵니다.

수치가 크다고 데이터가 깨끗한 건 아니라는 걸, 130만 개를 만들고 나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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