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지문의 난이도를 판정하는 세 가지 지표

영어 지문의 난이도를 판정하는 세 가지 지표

"이 지문 우리 애들한테 어렵나요?"

수업 준비할 때 매번 하는 판단입니다. 그런데 이 판단이 사람마다, 날마다 다릅니다. 같은 지문을 두고 어떤 날은 쉽다고 하고 어떤 날은 어렵다고 합니다.

지문 16,000여 개를 다루면서 이 판단을 어떻게든 일정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리된 세 가지 축을 공유합니다. 완벽한 공식은 아니고, 서로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구분하는 틀에 가깝습니다.

지표 1: 어휘 부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축입니다. 모르는 단어가 많으면 어렵습니다. 당연합니다.

다만 "모르는 단어 개수"로 세면 부정확합니다. 학생마다 아는 단어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등급별 단어 비율로 봅니다.

지문에 나온 단어를 난이도 등급으로 분류했을 때, 수능·심화 등급이 몇 퍼센트인지를 봅니다. 이 비율이 높으면 어휘 부담이 큰 지문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려운 단어가 많다고 무조건 어려운 지문은 아닙니다. 전문 용어가 반복해서 나오는 글은 처음 몇 문장만 넘기면 오히려 술술 읽힙니다. 같은 단어가 계속 나오니까요.

그래서 등급 비율과 함께 어휘 다양도도 같이 봅니다. 서로 다른 단어가 몇 종류나 쓰였는지요. 어려운 단어가 골고루 흩어져 있는 글이 진짜 어렵습니다.

지표 2: 문장 구조

두 번째 축은 문장이 얼마나 복잡한가입니다.

가장 단순한 지표는 문장 평균 길이입니다. 긴 문장이 많으면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거칠어서, 실제로는 이런 걸 같이 봅니다.

  • 절이 몇 겹인가. 관계절 안에 또 관계절이 들어가면 급격히 어려워집니다.
  • 주어와 동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사이에 수식어가 길게 끼면 학생이 동사를 못 찾습니다.
  • 분사구문·도치·삽입이 있는가. 앞서 다른 글에서 적었듯이, 이런 구조는 문법이 아니라 문맥으로 판단해야 해서 부담이 큽니다.

경험상 어휘보다 이쪽이 실제 체감 난이도에 더 크게 작용합니다. 단어를 다 알아도 문장이 안 풀리는 경우가, 그 반대보다 훨씬 흔합니다.

지표 3: 내용의 추상성

세 번째가 가장 측정하기 어렵고, 가장 중요합니다.

같은 어휘, 같은 문장 길이여도 다루는 내용이 추상적이면 훨씬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 — 누가 무엇을 했다 — 는 읽힙니다. 반면 개념과 개념의 관계를 다루는 글은, 문장 하나하나는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이걸 자동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대신 몇 가지 신호를 봅니다.

  • 추상명사(concept, tendency, implication 같은 것)의 비율
  • 구체적 명사(사람 이름, 장소, 사물)의 부재
  • 예시가 있는가 없는가

예시가 있는 글은 훨씬 쉽습니다. 필자가 추상적인 말을 하고 나서 "예를 들어"로 풀어주면, 학생은 그 예시를 붙잡고 앞 문장을 이해합니다. 예시가 없는 추상적인 글이 가장 어렵습니다.

세 축이 따로 논다는 점

중요한 건 이 셋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사실입니다.

  • 어휘는 쉬운데 구조가 복잡한 글이 있습니다. 소설류가 그렇습니다.
  • 어휘는 어려운데 구조가 단순한 글이 있습니다. 과학 설명문이 그렇습니다.
  • 둘 다 쉬운데 내용이 추상적인 글이 있습니다. 철학·사회학 지문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난이도 상"이라는 한 마디로는 정보가 부족합니다. 어느 축에서 어려운지를 알아야 처방이 나옵니다.

어휘가 문제면 단어장을 먼저 주면 됩니다. 구조가 문제면 문장 분석을 같이 해야 합니다. 추상성이 문제면 배경지식을 먼저 깔아줘야 합니다. 처방이 전혀 다릅니다.

학생에게 적용할 때

학생이 지문을 어려워할 때 이렇게 물어보면 축이 갈립니다.

"단어를 모르겠어, 문장이 안 풀려, 아니면 다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세 답이 각각 다른 처방으로 이어집니다. 학생 본인도 이 구분을 하고 나면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영어가 어렵다"는 말은 너무 뭉툭해서 아무 데도 못 씁니다. 어디가 어려운지를 세 갈래로만 나눠도 다음 행동이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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