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은 되는데 문제를 틀리는 학생에게

해석은 되는데 문제를 틀리는 학생에게

가장 답답한 유형의 학생이 있습니다. 지문을 해석시켜보면 다 합니다. 문장별로 물어봐도 막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풀리면 틀립니다.

이 학생에게 "단어를 더 외워라"거나 "문법을 다시 봐라"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되는 걸 시키는 거니까요.

이런 경우 원인은 대체로 세 가지 중 하나였습니다.

1. 문장은 읽었는데 글은 안 읽었다

가장 흔합니다.

해석은 문장 단위 작업입니다. 문장 열 개를 각각 정확히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 개가 모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별개의 작업입니다.

이 학생들의 노트를 보면 문장마다 해석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이 글이 뭐라는 거야?"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합니다. 문장을 다 처리하느라 글을 못 본 겁니다.

해결 방법은 단순합니다. 지문을 다 읽고 나서 책을 덮고, 한 문장으로 말해보게 합니다. 처음엔 못 합니다. 그러면 다시 읽습니다. 이걸 반복하면 읽는 방식 자체가 바뀝니다.

문장을 처리하는 독해에서 글을 구성하는 독해로 넘어가는 데는 대체로 몇 주가 걸립니다. 그동안은 속도가 오히려 느려집니다. 정상입니다.

2. 선지를 먼저 본다

두 번째로 흔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자각을 못 합니다.

문제를 풀 때 지문보다 선지를 먼저 봅니다. 그러면 다섯 개의 그럴듯한 문장이 머리에 먼저 들어옵니다. 그 다음에 지문을 읽으면, 지문에서 선지와 비슷한 부분만 눈에 들어옵니다.

앞선 글에서 오답 선지를 만드는 방식을 적었는데, 오답은 정확히 이 상태를 노리고 만들어집니다. 지문에 실제로 있는 내용이되 글의 결론은 아닌 것 — 선지를 먼저 본 학생이 걸리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확인 방법이 있습니다. 학생이 틀린 문제를 가져와서, 지문만 읽고 답을 스스로 만들어보게 합니다. 그렇게 만든 답이 정답과 비슷하다면 독해력 문제가 아닙니다. 순서 문제입니다.

3. '맞는 말'과 '이 글의 말'을 구별 못 한다

세 번째는 좀 다릅니다. 이 학생들은 오히려 배경지식이 많습니다.

선지 다섯 개 중에 세상 이치로 봤을 때 맞는 말이 두세 개 있습니다. 그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이 학생은 자기가 동의하는 것을 고릅니다. 지문이 그 말을 했는지와 무관하게요.

수능 영어에서 묻는 건 세상의 진리가 아니라 이 필자가 이 글에서 한 말입니다. 필자가 틀린 소리를 했어도, 문제의 정답은 그 틀린 소리입니다.

이 구분이 안 되는 학생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걸 고르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한 말을 고르는 거야."

의외로 이 한 마디로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의 성격을 오해하고 있었던 거니까요.

어느 경우인지 가리는 법

세 가지가 처방이 전혀 다르므로, 먼저 어느 쪽인지 알아야 합니다.

틀린 문제 다섯 개쯤을 놓고 이렇게 물어보면 대체로 갈립니다.

  • "이 글이 뭐라는 거야?" → 대답 못 하면 1번입니다.
  • "지문 읽기 전에 선지 봤어?" → 봤다고 하면 2번입니다.
  • "왜 이걸 골랐어?" → "이게 맞는 말 같아서"라고 하면 3번입니다.

세 번째 질문의 답이 "지문 몇째 줄에 이렇게 나와서"라면 그건 진짜 독해 문제입니다. 그때는 해당 문장을 같이 다시 봅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점

이 세 가지는 다 습관입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은 알려주면 그날 늘어납니다. 습관은 안 그렇습니다. 알려줘도 다음 시험에서 또 선지부터 봅니다. 몸에 밴 순서라서요.

그래서 이런 학생을 지도할 때는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합니다. 한 달 정도는 정답률이 안 오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떨어지기도 합니다.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새 방식이 아직 안 붙은 구간이니까요.

그 구간을 지나면 확 올라갑니다. 원래 해석은 되던 학생이니까요. 막힌 게 독해력이 아니었던 만큼, 풀리면 빠릅니다.

BLOG

EB Blog

영어 교사를 위한 수업 자료와 EB 활용 팁

해석은 되는데 문제를 틀리는 학생에게
학습콘텐츠

해석은 되는데 문제를 틀리는 학생에게

가장 답답한 유형의 학생이 있습니다. 지문을 해석시켜보면 다 합니다. 문장별로 물어봐도 막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풀리면 틀립니다. 이 학생에게 "단어를 더 외워라"거나 "문법을 다시 봐라"고 하면 아무 소용이…

08-08 · 39
영어 문장을 자동으로 분석하려다 겪은 실패들
학습콘텐츠

영어 문장을 자동으로 분석하려다 겪은 실패들

지문마다 문장별 구조 분석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주어가 어디고 동사가 어디인지, 어느 덩어리가 어느 덩어리를 꾸미는지를 자동으로 표시해주는 기능이요. 되긴 됐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영어 문장은 이렇게 읽는다"고…

07-31 · 37